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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철학, 영혼, 생명

과거의 과오를 되풀이 하지 않으려면

by SacredCrow 2020. 2.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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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운 과거를 극복하려면



  누구에게나 부끄러운 과거가 있다. 


그런데 과거의 나는 이미 현재의 나와 다른 사람이다. 과거의 행적에는 그러한 상황과 환경, 문화적 성향, 욕망, 건강상태 등의 제요소가 지대한 작용을 한 것이다. 


상당한 부분이 내가 아닌, 내가 내몰려진 환경에 의해서 나는 그 일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또한, 에고로써 나라는 존재는 늘상 일관된 뿌리 역을 하지 못한다. 에고라는 건 존재의 결과로 드러난 것이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무엇보다 나의 신체를 구성하는 세포들도 상당부분 물갈이 되어 버린다.그래서 나는 과거를 돌이켜보며 자꾸 부끄럽거나 괴로워할 필요가 없다. 


그렇다고 과거의 과오에 대해서 나를 무책임하게 무조건 잊은 척 하고 살거나 나를 내 멋대로 해방시키는 것도 옳지 않다. 


그건 마치 믿음으로써 은혜를 얻어 죄가 사하여진 기독교식 편의주의와 비슷하다. 죄에 대한 생각을 편의상 그런 식으로 처리해버리는 것은 정신적 질환이나 다름 없다.  


쉬운 예로 우리는 영화 ‘밀양’에서 그것의 부조리함을 목격했다. 


중요한 건 과거의 그 시점에 그 환경과 그 상황, 나의 욕망이나 번뇌, 신체 상태 등이 어우러지는 동일한 조건에 지금 내가 놓여졌을 때에 내가 또다시 그러지 않을 수 있는 가이다. 


왜 그러지 말아야 하는가, 왜 그렇지 않는 것이 옳은 가, 그러지 않는 나로 거듭나려면 어떻게 마음을 가져야 하는가, 그러지 않는 방법은 무엇인가에 대해서 합당한 논리에 의해 정확히 정리를 해야 한다.


또 그러한 정리를 함에 있어서, 나를 위한 이기적 동기에 의해 나를 변호하여 나 자신을 기만하는 식으로 전개해서는 안된다. 


이 경우 여전히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나를 동일시 하는 것이고 그에 따라 방어기재가 작동하여 사안을 올바로 정리하는 것을 교란하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바람직한가?


어차피 과거의 그 나는 지금의 내가 아니므로 마치 제3자를 보듯이 하면서 보편의 도덕을 통해서 정리해야 한다. 그런 정리가 없다면 무엇을 청산한 것인가 또 무엇을 배운 것인가. 


배운 것이 없다면 나란 존재는 과거의 죄악이 현재로 소환되어 나를 과거의 부끄러운 존재로 자꾸만 규정하도록 하는 통로와 같은 존재밖에 되지 않는다.


그렇게 되면 이기적으로 자신을 변호하려만 들 것이고 그럴때마다 고통스러울 것이다. 어차피 변호가 되지도 않는다는 걸 본인이 느끼기 때문이다. 그래서 종교를 찾는 이들도 많다. 그런식으로 종교를 찾게되면 결국은 더 심각하게 정신을 아집과 위선의 아교로 굳어버리게 할 것이다. 


에고가 자신을 지키기 위해 보편의 윤리나 양심에 의해서 결코 변호되지 않는 불편한 행적을 정상적인 행적으로 반전시켜 인식해버리는 또다른 위선적인 생각으로 마음을 정리해버리고 그 짓에 능숙해져 버리면 그 자가 바로 소시오패스다.


우리는 보편의 도덕을 체득하기 위해서 영원한 빛과 대면할 필요가 있다. 끝없는 무위의 공허에서 근원의 존재와 조우할 필요가 있다. 그러면 그로부터 영원불변한 진리를 머리와 가슴 나아가 시공을 초월한 의식의 상태로 직관할 수 있게 된다. 에고를 잠시 내려놓기만 하면 된다. 



맑은 눈빛으로

진리를 판별하고

올바른 삶의 방식으로 

좁은 길을 택하기를 원한다면

거움을 쫒아내고

두려움을 몰아내라.

또한 희망을 피하며

또한 고통이 머무르지 못하게 하라.

이것들이 지배할 때

정신은 어두워지고

사슬에 옭매이게 되는 법이니. 


-보에티우스


그리고 공부는 방향을 얻는다. 더  깊어지고 더 길어지고 높아지고 빨라진다. 여기에서 만족하지 말고 더 나아가야 한다. 


가슴으로 얻었으면 지성으로 그것에 의문을 더해 깊이 되물어야 한다. 확고하지 않은 것으로 애매하게 놔두면 또다시 안개가 모두를 덮어버린다. 


"움직이면 곧 그림자가 나타나고, 깨달으면 곧 티끌과 같은 번뇌가 나도다"  

-만공월면 선사



내가 이러한 노력을 통해 나를 능가하는 보편의 도덕을 만나고 끝없이 지성으로 그것을 깨우쳐가지 못한다면 나의 안목을 키울 수 없고 그래서 알 수 없고 괴롭고 그래서, 


회개의 떳다방 같은 그리스도 신앙의 대리점에 들어가서 스스로 그릇된 해방감을 맞보며 중독되게 될 수도 있다. 


과거의 과오를 되풀이 하지 않으려면 그 과오의 본질에 대해서 정확히 알아야 하고 그 것을 알아볼 안목을 키워야 하고, 내면의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리고 그 행동을 다시 하지 말아야 할 자명하고 정확한 이유를 알아야 한다. 아는 것을 가슴으로 새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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