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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철학, 영혼, 생명

종교를 멀리해야 하는 이유

by SacredCrow 2022. 5.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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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헤르메스 전집에 있는 시 한편을 소개하고 싶다. 



너는 신과 대등해지지 않으면 너는 신을 파악할 수가 없다.
비슷한 것만이 비슷한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모든 물질적인 것을 훌쩍 뛰어 넘어선 모든 크기를 넘어선 저 위대함과 비슷하게 부풀어 올라라.
모든 시간을 넘어 솟아 올라 영원히 하나가 되어라. 그러면 신을 파악하게 될 것이다.
너에게 불가능한 것이 없다고 생각하라. 너도 불멸이라고 생각하라
너도 너의 생각으로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고 모든 기술과 모든 학문을 알 수 있다고 생각하라.
모든 생물이 드나드는 곳에서 너의 집을 찾아라.
모든 높이보다 높아지고 모든 깊이보다 깊어져라.
너의 안에서 모든 대립되는 특질 즉 더위와 추위, 메마름과 유동성을 결합하라.
네가 동시에 모든 곳에 땅과 하늘에 바다에 있다고 생각하라.
아직 태어나지 않았다고 자궁 안에 있다고 생각하라.
너의 생각 속에서 니 모든 것, 시간과 공간, 모든 물질과 양을 동시에 포착하라.
그러면 신을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나의 몸 속에 영혼을 담아두고 스스로를 낮추어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나는 땅과 바다가 두렵다.
나는 하늘에 올라갈 수 없다.
나는 내가 무엇이었는지 무엇이 될 지 모른다. 하고 말한다면
네가 신과 무슨 관계가 있겠느냐
몸에만 집착하며 그리하여 약해지면 너에 생각은 아름답고 선한것을 전혀 이해할 수가 없다.
신을 모른다는 것은 최고의 악이다.
그러나 신을 알 수 있다는 것
신을 알기를 바랄 수 있다는 것은
곧장 선으로 이르는 길이다.
그리고 그 길은 가기에도 편하다.
모든 곳에서 신이 너를 맞이하러 올 것이고
모든 곳에서 신이 너에게 나타날 것이기 때문이다.
네가 신을 찾지 않을 때와 장소에서도 마찬가지다.
깨어있든 잠을 자든 물로 여행하든 육지로 여행하든
밤이든 낮이든 말을 할 때이든 입을 다물 때이든 마찬가지다.
신이 아닌 것이 없기 때문이다.
너는 신은 보이지 않는다 라고 말한다. 그렇게 말하지 말아라.
신 보다 더 분명하게 자신을 표현하는 존재가 누가 있는가?
바로 그러한 목적을 위해서 신은 만물을 만든 것이다.
보이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비 물질적인 것도 마찬가지다.
마음은 그것이 좋아하는 것에서 보이며
신은 그가 일하시는 곳에서 보인다.
크고 위대한 자여
지금까지 나는 너에게 진실을 보여줬다.
나머지는 네 스스로 내가 가르친 대로 생각하라.
그러면 길을 잘못 드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이 글을 읽기에 앞서 신은 타자가 아니다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신은 독립된 별개의 인격체가 아니다. 

이 글은 그 것을 비밀로 하고 있다.

신이 별개의 존재가 아니라는 진실을 애써 가르치지 않고 메타포 뒤에 숨기고 있다. 

 

기독교의 성경도 이와 비슷하다. 그러한 이유로 인하여 결과적으로 신도에게 왜곡된 가르침을 전달하고 있고 엉뚱한 믿음의 양식장에 갖히게 하여 진리탐구를 할만한 정신의 싹을 잘라 버린다. 출발선이 잘못되어 있으니 신에 대한 오해와 잘못된 편견으로 인하여 진리에 도달할 수 없거나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는 정신이 된다. 

신이 빛나고 자애롭고 잘생기고 주로 인생의 대부분은 고약하게 설정을 해주셨고 시샘 많고 그러나 믿으면 종국에는 천국 문을 열어줄 거 같은 분으로 전락했다. 그건 그냥 악령 아닌가? 그런 망나니를 믿는 건 개돼지 뿐이다.

예수님 조차 그런 신은 믿지 않는다. 그런 신을 믿으라하는 기독교를 예수님은 믿은 적이 없다. 

과학적 검증이 안되는 것은 신념으로 주입하고, 우상숭배의 형식으로 미루어 볼 때 기독교(개신교, 천주교)는 무속과 다를 게 없다. 그러나 기독교는 지들은 무속이 아니라며 무속에서 벗어나려면 기독교를 믿으라 한다. 그러나 그렇게 말해온 기독교야말로 무속과 일치한다. 

심지어 불교까지도 우상숭배와 현실 구복을 위해 절에 가서 비는 중생이 태반이다. 그 역시 무속을 소비하던 패턴의 일종이다. 불교는 모든 것의 본질과 제1원인에 관한 깨달음을 추구하며 진리를 탐구하는 곳인데, 대다수의 교인은 그런 것에 관심이 없고 불당에 가서 현실구복을 위해 무당집처럼 이용한다. 더 크고 더 유명한 곳에 가서 기도빨을 극대화하리라 믿는다. 법당에 온 개돼지와 같은 것이다.   

무지한 인간들은 불교에서 신을 찾는다. 그러한 중생의 수요는 불교와는 별개의 수익 사업 영역을 조성한다. 불교에서 파계한 스님이 무속인이 되어 불교이면서 돈을 받고 현실구복해줄 신을 모시는 법당을 차린다. 무속인이 불교적 느낌을 연상시키는 장식들을 구비한다. 

중생들에게 있어서 기독교는 진정한 신을 실체를 못알아 보게 하는 무속이고 불교는 무속의 또다름 변형이다. 결국 모든 중생은 무속을 믿고 있다. 심지어 과학까지도 종교의 대상으로 믿는다. 과학은 과학적방법을 통해서 존재하는 특성이 있으나 그 과학적 방법은 무시하고 과학 학설과 유명 과학자들을 믿는다. 중생에게는 모든 게 미신을 대하는 방식으로 소비되는 것이다. 


나는 아얘 맹목적인 믿은 자체를 미신이라고 본다. 맹목적인 믿음은 예외를 인정하지 않는다. 때문에 비판을 하지 않는다. 객관화를 하지 않는다. 그것은 완고해지고 고집을 부리고 급기야 권력과 위선과 폭력을 낳는 뿌리이다.

그대는 신이 아니고, 근본 영이 아니며, 사람이 아니고, 이미지가 아닌 그런 신을 사랑하라. 그 분은 모든 둘인(나와 타자로 분리된 ) 것과는 다른, 완벽하고 순수한 절대적인 일자이다. 그 분 안에서 우리는 무(無)에서 무로 영원히 가라앉아야 한다. - 에크하르트

 

이분법으로 분리된 신을 찾지 말고 알려고도 말라. 지성을 멈추고 사랑으로 남아라. 이분법으로 분리된 신은 없다. 신은 나와 일체이다. 무(無) 속에서 영원히 무로써 존재하라. 그곳에서 신성은 대상이 아닌 나와 물질의 합일된 조화 속에 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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