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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철학, 영혼, 생명

영혼과 백과 몸의 관계 그리고 귀신(鬼)에 대한 나의 생각

by SacredCrow 2022. 9.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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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몸과 마음과 영이 조합이 되어 생명활동을 하고 있을 때 자아가 존재하고 비로소 "나"가 성립된다. 


내가 발가락이 잘려 나간다면 언제나 나라 여겼던 발가락은 이제 나와 무관한 사물이 된다. 
발가락과 나는 생물학적으로 같은 DNA를 가지고 있는 조직이다. 
그러나 발가락이 더 이상 내가 아닌 건 
그것이 더 이상 나의 몸과 마음과 영 조합으로 진행 중인 생명활동과 그로 인한 "나"라는 정체성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 "나"라는 건 어디까지가 나란 말인가?

(※이는 마치 로만 폴란스키의 영화 "The Tenant"에서 나온 대사를 연상시키는 주제이다.)

 

다리가 잘리면 다리와 내가 있다. 다리는 더 이상 내가 아니다. 
허리가 잘리면 잘리 하체와 내가 있다. 하체는 더 이상 내가 아니다. 
목을 자르면 잘린 몸과 내가 있다. 그러나 몸은 더 이상 내가 아니다... 
하지만 이 경우 머리 역시 내가 아닐 것이다. 

이미 죽어서, 나는 이미 "나"라고 하는 정체성이 성립하기 위해서 필요한 필수 요건인 
몸의 생명활동과 마음과 영이 합체되어 있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자동차로 예를 든다면 차는 달리고 있는 경우에만 차인 것이다. 
달리지 않고 있다면 죽은 거와 같다. 

 

생명 유지와 개체적 자아가 실존하는 체계에 통합되지 않은 유기물은 절대로 "나"가 될 수 없다. 한때 나의 몸이었더라도 말이다. 그러니까 떨어져 나간 손을 다시 붙인 들 이미 죽은 몸이라면 소용이 없는 것이고 살아 있는 사람이라면 생명활동과 자아의 형체 유지 공명에 의해서 고집되고 있는 기관의 복구 의지에 의해 붙을 수도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사람도 내장과 살과 뼈가 온전히 있더라도 
영혼이 떠난 이후에는 몸과 마음도 분리되고 몸은 더 이상 생명활동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몸이라는 하드웨어는 잠시동안 완전체를 유지하고 있을 것이다. 
나는 몸과 동일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단지 몸만이 내가 아니다. 
나는 몸과 마음과 영의 조합에 의한 생명활동을 통해서 정체성이 드러난 존재이다.

몸과 영과 혼을 아교처럼 엮어서 묶어두는 것이 바로 백(魄)이다. 
백은 몸이면서도 몸처럼 단단하지 않고 영혼처럼 가볍지 않다. 
백은 어쩌면 프라즈마 같은 형태일 수도 있다.
백이 있기에 영혼은 몸에 유도되어 유지된다. 
몸이 있기에 몸이 받아들인 음식에 의해 영양분이 에너지가 되어 
백에도 공급 되고 영과 혼은 백에 의해서 몸에 잘 붙어 있게 된다. 

 

굶주렸던 사람이 물을 마시고 음식을 먹으면 정신이 든다는 거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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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surrectio Chr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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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몸은 끝 없이 뻗어 가는 영혼의 감정적 극단성을 미연에 막아주는 제동장치이며 다른 혼백(鬼)으로부터 침입을 막아준다. 현상계의(물질계) 에너지를 공급해주는 장치로써 몸은 영혼백을 더 선명하게 해 준다. 
물론 여기서 영은 약간 예외인데. 영은 혼백처럼 개체성에 의거하지 않는다. 

 

영은 전일적 자각을 할 수 있으며 본시 만물과 합일한 형태로써 개체성에 잠시 접해 있다.
영은 우리 자아의 근본이고 마음의 뿌리이며, 만물의 본체이다.

 

나는 영이 카발라의 아인소프, 힌두교의 코잘체와 부다체 영역에 걸쳐 있다고 본다. 
혼은 지성과 의지, 감정의 영역으로 멘탈체와 아스트랄체에 대치되고 백은 에테르체라고 보인다. 

 

영은 본시 만물과 하나이나, 영혼은 혼에 의해 "개체성을 띈 영"이다. 혹은 현상계에 적응하기 위하여 개체성 버젼으로만 존재하는 영이고 이를 위해 혼, 백, 몸이 개체성으로 제한시키는 역할을 한다.

 

 

혼은 지성과 의지와 감정의 영역이다. 

백은 영혼을 몸으로 유도하고 몸이 영혼과 마음으로(의식, 무의식) 통하도록 중계한다.

 

나는 백(魄)이 기억 , 감성과 지성의 일부 메타적 정보와 그 그림자들을 흐릿하게나마 혼으로부터 일부 상속받는 걸 아닐까하는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현상계에서는 우리는 영을 합일적 의식으로 사유하지 않고 영 또한 현상계에서는 전일적 합일의식에 의해서 존재하지도 않는다. 현상계에서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만, 영은 그저 개체성의 뿌리이자 마음의 주체성으로써만 자각되어 있다. 

 

 

이것은 다분히 개체적 의식인데 이 의식은 혼과 백에 의해서 유도되고 있고 몸에 의해서 확신되고 있다. 몸은 우리의 감각에 의해서 확인되는 명백한 개체성이라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사실 이 역시 우리의 인식론적 착각이지만)

 

영이 없다면 혼백은 그냥 귀(鬼)가 되어 심한 감정적 극단성이나 단편적인 기억에 대한 집착을 하며 떠도는 허물 같은 것이 되어 버린다. 귀(鬼)가 자아가 없는 거처럼 보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영이 빠졌고 혼은 미약하게 잔존하고 백의 에너지 밀도는 여전히 유지하고 있는 상태가 귀신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귀신은 감정과 잔존 지성과 의지만 있고 본래 그 사람의 정체성과 자아가 없다.

 

※물론 경우에 따라 사망 초기 약 50일간에는(불교의 49제에 근거한 수치로 가정) 영을 담고 있다가 상실한지 얼마 안 된 이 혼백이 마치 정체성이 있는 거처럼 활동할 수 있다. 혹은 다른 귀(鬼)에 의해서 통합 접합되거나 한 경우에도 그 나름의 에너지와 의지 다발의 축적으로 인해 괴이한 태도나 마치 자아가 있기라도 한 거마냥 태도를 보일 수도 있으리라 생각된다. 

 

 

사람이 죽으면 영은 주민등록상의 이름과 자아를 버리고 다시 만물과 그 만물의 근원까지 아우르는 합일 의식의 본래 상태로 전환되고 혼백은 잠시 귀(鬼)가 된 상태로 몸에서 떨어져 나간다. 개체를 버리고 전일성의 존재로 회귀한다. 이 때문에 죽으면 돌아가셨다라는 말을 하는 건 아닐까?

혼과 백 사이도 서서히 떨어진다. 백은 그간 몸으로부터 받아온 에너지와 형태, 기억 등이 잔존하여 배회하는데, 때론 다른 귀(鬼)의 먹잇감이 되기도 하는 걸로 보인다. 

 


그러나 그 백(魄)은 마치 나의 각질처럼(나에게서 떨어져 나간 허물처럼) 혹은 잘린 발톱처럼... 더 이상 내가 아니다. 혼은 지성과 감성체이다. 이 혼은 백보다 더 휘발성이 강해서 금세 사라질 것이다. 영안이라는 자들의 증언에 의하면 대부분은 조선 시대의 소복 귀신이나 1천 년 전의 신라시대 고려시대 귀신은 보는 경우는 드물다.

 

시간이 지나면 대부분의 혼백은 그 에너지가 약화되어 서서히 사라지기 때문이다. (뱀 허물이 자연적으로 분해되어 사라지듯이) 내 느낌에는 길어봐야 수십 년 정도인 걸로 추정된다. 그렇게 본다면 수백 년 이상 된 귀(鬼)를 보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걸 이해할 수 있다.

백(魄)은 서서히 사라지고 몸 또한 서서히 자연부패하여 사라진다. 

 

필자가 생각하는 영혼백육의 구조 및 관계와 들뢰즈의 사중체를 접목하여 도식을 그려보았다.

영혼백육의 구조 구상

 

작품 출처 : Octavia Mona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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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영"은 본디 개별 인격체가 아닌 "법신적 신성"을 전제로 한 합일 의식과 개체적 의식 사이에 걸쳐 있다. 영이 이렇듯 걸쳐 있기에 우리는 수행을 통해서 힌두교의 위빠사나, 불교의 견성이나 서양 밀교(Esoteric)의 영적 각성, 이집트 헤르메스의 합일 의식 등을 체험할 수 있다. 그 합일 의식은 히브리인들의 "생명의 나무"(카발라)의 아인소프와 케테르 사이의 여행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구조에서 영의 근원적 존재성을 인격을 가진 신격화 한 것이 북유럽의 토르와 오딘 신화 및 이그드라실 신화 구조이고, 그리고 기독 신앙에서 인격신인 화신으로 와전된 원형인 법신적 신성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불교에서 화장을 하는 이유는 이 백이 서서히 사라지지 않고 신속히 몸과 분리되길 바라거나 아얘 불에 의해서 와해되어버리길 바래서 그런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불(佛) 법에서는 영이 중요하다. 불(佛) 법에서는 나머지 혼과 백은 번뇌의 허물이며 속세에 남아 자꾸 또 다른 악업의 원인이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이롭다고 본 건 아닐까? 혼백은 생전에 영에 의해서 소유되어 있을 때에 가지고 있던 기억과 감정에 의해서 그 의지와 고집이 남아 있기 때문에 나쁜 상황으로 죽은 사람은 악독한 혼백을 남기는 경우가 있을 걸로 나는 추정한다.

 


심지어 몸을 잃은 상태이기에 몸의 (사실은 유용한) 기억 상실기능과 산만한 마음의 방향 틀기 기능이 없어서 감정이 어느 한 곳에 꽂히는 것이 제동 기능 없이 극단으로 치달을 수 있다. 극단적인 원한이나 슬픔, 분노가 남겨진 혼백의 폭주는 제동 장치가 없는 자전거가 비탈길을 내려오는 거와 같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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