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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철학, 영혼, 생명

현대의 계몽과 민주주의 , 종교의 야만성과 그 이유

by SacredCrow 2022. 7.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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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고등교육을 받은 것 만으로도 스스로 "계몽되었다" 하는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게 된다. 그런데 그러한 믿음은 권력 되고 권력은 종종 지성을 묵살하게 된다. 지성이 묵살되면 판단은 합당한 논리에 의한 것이 아니라 권위에 의해서 이뤄지게 된다. 권위에 의한 사고를 하면서 계몽의 여러 잇점은 사라지고 야만성만이 남게 된다.

결국 계몽되었다고 하는 믿음이 야만을 낳는다.

민주주의 역시 그러하다. 우리가 "민주주의를 쟁취했다.", "민주화를 했다." 라는 믿음을 가지는 시점부터 그 사회의 민주주의는 퇴보한다. 그러한 믿음은 역시 맹목적인 자만심과 특정 민주화 인사에 대한 추종이나 우상화를 낳는다. 결국 그것이 독재이고 독재를 추종하는 파시스트를 낳는다.

우리나라는 민주화했다 하는 믿음이 독재와 파시즘을 낳는다.

과학 또한 그렇다. 사람들은 흔히 "과학적이다."라는 말을 혼동한다. 과학적이다라는 건 과학적 방법에 의해서 사고를 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은 그렇게 방법으로써 과학을 인식하지 않고 위인전에 나오는 과학자와 그들의 성과를 외우고 이해하는 것으로 과학을 안다고 여긴다. 결국 그건 과학을 과학이 아니라 종교적인 태도로 대하고 있는 것이다.

과학이라는 개념을 종교적으로 믿음의 대상화함으로써 과학이 아닌 종교화 된다.

심지어 종교 역시 그러하다. 올바른 종교는 맹신이 아니라 진리를 체득하여 그로부터 철학적 사유를 통해 신념을 얻는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종교는 (특히 기독교) 그와 반대로 존재한다. 맹신으로 시작하고 맹신에 의해서 판단하도록 훈련을 받는다. 그러나 예수님은 진정한 철학자였으며 진리 탐구를 하던 사람이다. 예수님은 기독교 교회에 다닌적이 없다. 그의 죽음 이후에 제자와 그 후손들이 대대로 예수를 우상화하여 종교적 믿음의 대상화 작업을 해온 것이다.

 

현대의 종교인들은 신성의 물화과정과 그 위대한 현현의 역사를 사유하지 않는다. 우리는 의식에서 신성을 기억하지 못하는 채로 태어난다. 우리의 정신 의식에서는 이미 신성이 죽어 있다. 인격신은 신성이 죽은 그 마음 자리에 비집고 들어와 있다. 인격신은 신성의 주검이 사람들의 착각에 의해 형상화 된 것이다. 우리는 인격신으로 끝 없이 진정한 신성을 죽이고 있다


결국 종교는 철학적 근원이 상실되고 맹신을 요구하는 권력이 되었다. 우리가 바라보는 건 진리가 아니라 종교라는 형식이다. 교회에 간다. 먹사의 잡소리는 듣는다. 십일조를 낸다. 천주교 교회에서 묵주를 구입한다. 성모 마리아 앞에서 아상과 색수상행식의 조화로 드러나는 욕심 성취를 기도한다. 사찰에 간다. 앉아서 멍때리며 역시 되고 싶은 거 얻고 싶은 것을 기원한다. 기왓장 구입한다. 염주를 구입한다. 템플스테이에서 그 빌어먹을 힐링이란 걸 한다라고 느낀다.

이런 형식은 종교의 본질에서 많이 어긋나 있다.

우리는 믿음이라는 습관에 의해서 늘 이러한 본질이 왜곡되어버린다. 계몽, 민주주의, 과학, 종교는 왜 이렇게 되는가? 이러한 것들이 결론으로 고정되는 것이 아니라 방법과 과정으로써 존재하는 것이기에 그렇다.

 

믿음이라는 권력, 권력이 낳는 권위, 권위라는 획일성과 굴종의 미덕이 지배하는 사회가 되었기 때문이다. 때문에 믿음은 모든 것의 실상을 우리가 알고 있는 의미의 반대로 만들어서 숨긴다. 그것은 계몽, 민주주의, 과학, 종교 등의 실체가 사실은 방법으로써도 역시 충실하게 존재해야 했던, 그 본질을 우리가 간과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이러한 변증법적 와전 현상을 인지하고 이를 성찰해야 하고 이를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 언제나 생각을 객관화 하고 올바른 논리로 비판하는 태도를 고수해야 한다.

 

우리가 보는 것이 고정된 사실인가? 변화하는 과정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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