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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를 멀리해야 하는 이유 ※이 블로그는 중간중간 보이는 광고 클릭 시 발생하는 소정의 비용으로 운영됩니다. 우선 헤르메스 전집에 있는 시 한편을 소개하고 싶다. 너는 신과 대등해지지 않으면 너는 신을 파악할 수가 없다. 비슷한 것만이 비슷한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모든 물질적인 것을 훌쩍 뛰어 넘어선 모든 크기를 넘어선 저 위대함과 비슷하게 부풀어 올라라. 모든 시간을 넘어 솟아 올라 영원히 하나가 되어라. 그러면 신을 파악하게 될 것이다. 너에게 불가능한 것이 없다고 생각하라. 너도 불멸이라고 생각하라 너도 너의 생각으로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고 모든 기술과 모든 학문을 알 수 있다고 생각하라. 모든 생물이 드나드는 곳에서 너의 집을 찾아라. 모든 높이보다 높아지고 모든 깊이보다 깊어져라. 너의 안에서 모든 대립되는 특.. 2022. 5. 16.
메타포는 감각의 불모지를 드러낸다 이원성 넘어의 것을 엿보기 아버지의 경계는 존재(Sein)을 알게하고 모성이 주는 가능태는 정재(Dasein)를 감지하게 하는 것이다. 정재는 이원성을 완결하고 에고는 이로써 견고해지며 패르소나는 조정된다. 이원성의 규칙은 지나치게 순행적이며 진부하게도 틀에 박혀있고 예측이 가능하며 일반적이다. 그러나 그들 이원성의 복합적인 개입으로 세계는 기하급수로 복잡해진다. 이원성의 기본 룰이 중첩되면 서로를 교란하여 제대로 알아볼 수 없다. 따라서 이원성의 제한성이 마치 없는 걸로 착각하게 하고 혼란스러워진다. 이는 술어를 보고 주어를 추정하는 문제 봉착하게 한다. 통찰의 좌절은 이런 식으로 훈련된다. 그래서 세계를 미분해볼 필요가 있다. 언어나 삶으로 초점을 좁혀보자. 언어 이면의 무엇. 예측 가능한 순행 이면.. 2020. 3. 2.
과거의 과오를 되풀이 하지 않으려면 부끄러운 과거를 극복하려면 누구에게나 부끄러운 과거가 있다. 그런데 과거의 나는 이미 현재의 나와 다른 사람이다. 과거의 행적에는 그러한 상황과 환경, 문화적 성향, 욕망, 건강상태 등의 제요소가 지대한 작용을 한 것이다. 상당한 부분이 내가 아닌, 내가 내몰려진 환경에 의해서 나는 그 일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또한, 에고로써 나라는 존재는 늘상 일관된 뿌리 역을 하지 못한다. 에고라는 건 존재의 결과로 드러난 것이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무엇보다 나의 신체를 구성하는 세포들도 상당부분 물갈이 되어 버린다.그래서 나는 과거를 돌이켜보며 자꾸 부끄럽거나 괴로워할 필요가 없다. 그렇다고 과거의 과오에 대해서 나를 무책임하게 무조건 잊은 척 하고 살거나 나를 내 멋대로 해방시키는 것도 옳지 않다. .. 2020. 2. 27.
세계는 무엇의 은유인가? 세계는 은유 세계는 우리의 감각을 통해 인지된다. 감각은 전기 신호로 뇌에 도달한 후 우리의 마음에 상으로 맺히는 식으로 해석된다. 감각은 세계에 관한 객관적 재료를 전송하고 뇌는 환상을 만들어 내고 마음은 이를 바라보는 거울이다. 은유를 통해서도 한 세계가 인지된다. 이때에는 감각으로 들어온 정보는 아니지만 마음에서 생겨나서 마음에 상으로 맺히는 동일한 작동방법으로 해석된다. 결국 세계가 우리에게 도달하는 여정의 종단부 형식은 우리의 해석안에 놓여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들은 사실상 세계를 해석함과 동시에 우리들 만이 인지할 수 있는 세계를 창조하고 있다. 은유는 그 은유 이면의 세계로 우리를 인도한다. 은유 표현으로 어떤 세계가 펼쳐지고 이 세계의 이면 세계로 우리를 인도한다. 세계의 이면에 무엇인.. 2020. 2. 25.
유물론, 관념론, 불가지론 등 근대 서양철학의 미망 『핵심만 빼먹은 서양 근대 철학』 유물론과 관념론, 제대로 이해하지 않으면 이 두가지 개념 사이에서 배회하게 만드는 서양 철학의 심각성을 한번 생각해보고자 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두 집단과 불가지론자 집단은 모두 가장 핵심을 배제하고 있다는 점이다. 레닌은 『유론론과 경험비판론』에서 흄과 칸트의 불가지론의 본질에 대해 다음과 같이 비판하고 있다. 엥겔스는 『포이에르바하론』에서 철학자들을 '두 개의 진영'으로 나누고 있다. 유물론자는 자연이 제1차적이고 정신이 제2차적인 것이라고 보지만, 관념론자는 그 반대로 본다는 점에서 양자의 근본적인 차이를 발견하였다. 그리고 엥겔스는 이 양자의 중간에 세계의 인식 또는 적어도 그 완전한 인식의 가능성을 부정하는 사람으로서 흄과 칸트의 지지자들을 세우고 그들을 .. 2020. 2. 24.
객관화와 인간다움 객관화와 인간다움 자기 주장의 논거를 자신의 믿음 속에서 찾는 사람들은 객관화를 하지 못하고 있다. 객관화를 하지 못하면 독단이 되고 아집이 된다. 독단과 아집은 타인과 공감하거나 설득을 할 수 없다. 그러나 독단과 아집은 이런 불통의 상황에서도 자신이 잘하고 있다고 믿는데에 심각성이 있다. 독단과 아집은 단순히 외부로 드러난 태도기이만 한게 아니라 자신의 내면을 단속하는 수단이기도 하다. 객관화를 하지 못한다는 것은 이처럼 자기의 상태를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없다는 데에 있다. 이것이 '매몰된다'라는 것이다. 이렇게 매몰 되면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이 정말로 알고 있는 것인지를 알 수도 없다. 이런 함정에 빠지지 않으려면 스스로 늘 비판적으로 사고하는 방법을 터득하고 비판적으로 사고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2020. 2. 21.
생각이 매몰되면 안되는 이유 매몰되는 현상에 대해 무언가를 정확히 안다는 것은 중요하다. 정확히 알기 위해서 사고력을 키우는 훈련도 늘 해야 한다. 어떤 대상이건 그것이 일이거나 사물이거나 우리가 그것의 좋고 나쁨을 통찰하는 것은 필요하다. 그런데 사고에는 늘 감정이 개입한다. 감정은 우리의 사고를 돕기도 하지만 해치기도 한다. 어떤 사고의 대상에 대하여 지나치게 감정적으로 매몰되면 그때는 그러한 통찰의 의미가 퇴색되고 반전이 일어난다. 더 이상 우리는 통찰로부터 오는 수혜를 얻지 못한다. 그것들에 대해 감정적인 불편함을 계속 이어가거나 불편한 생각들을 계속 한다면 같은 방식으로 그러한 대상들이 하나 둘 계속 늘어감에 따라 세상은 점차적으로 나에게 적대적인 것이 되어가고 나는 고립되어 간다. 감정으로 고착화되는 모든 것들은 아집이 .. 2020. 2. 20.
믿음이라는 감옥 믿음은 악의 근원이다 믿음은 생각을 고정시키고 나의 생각을 나와 분리시켜 나의 사고를 억제하고 나를 그 고정된 생각에 의해 지배받도록 한다. 믿음은 권력이며 깨워있는 자를 재우는 수면제다. 믿음은 우선 나를 지배하고 다음에는 세상을 지배하려 든다. 어떤 깨우침 이후에는 반드시 잊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믿음은 마음에 사상을 형성하고 고집하게 하고 결국 권력이 되고 그 권력에 굴종하며 부조리한 생각과 행동을 하게 한다. 본례 진리를 깨우치면 그것을 인가한 생각의 기쁨으로 생명력이 샘솟는다. 그러나 이후는 죽은 사상 뿐이다. 사상은 사고를 죽이는 과정을 지배하는 암세포다. 죽기전에 죽여야 한다. 죽여야 정신이 산다. 다시 깨우침은 돌아온다. 현상계에서 깨어있다는 것은 고정된 결과이거나 상태가 아니라 운동이.. 2020. 2. 19.
무경계로부터 얻는 인간다운 삶 무경계 경계가 사라진다는 상황은 하나의 전체가 되어버린 상황일까?경계가 사라지면 나는 객체성을 벗어난 것일까?그러나 그렇지 않다. 의식이 있는 한 객체성은 유지된다. 분리되었던 내가 경계를 허물어 물아일체가 된다해도 그 물아일체라 말하는 자가 있다. 이렇게 의식만은 떨칠 수 없다. 객체는 의식이 있는 전체이다.그렇다면 경계가 사라진 상태에서 의식이 있는 경우는 어떤 상황일까?그것은 완전한 전체의 상태가 아니라, 다만 의식이 경계를 의식하지 않는 경우가 아닐까?경계는 늘 있다. 그러나 의식은 경계를 의식하는 정도를 선택할 수 있다. 경계를 허물기 위해서 의식은 마치 경계를 버리는 듯한 행동을 한다. 의식이 경계를 버리다보면 나는 완전히 다른 형태의 자아로써 존재하게 된다. 물론 이 경우에도 내가 합일된 전.. 2020. 2. 18.
몸과 나 나는 내 몸의 간처럼 해독하지도 위장처럼 소화하려 하지도 발처럼 앞으로 내딛는 일이라든지 페처럼 산소를 받아들여 피에 공급 한다든지 심장처럼 펌프질이나 눈처럼 뭔가는 보고 빛의 자극을 수집하여 이해할 수 있는 정보로 꾸미는 일에도 목적을 둔 적이 없다. 이렇게 내 몸의 주요 부분은 내겐 낯설고 나와 같은 목적을 두고 있지 않다. 그들은 자신의 본분에만 충실하다. 사실 그들은 충실하지도 않다. 그저 생겨먹은대로 하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나는 그것들이 작동하여 공동으로 조성한 생명 활동의 지속 위에 얹혀져 있다. ‘내 몸에 국한된 나’는 어떤 목적을 향해 나아간 적이 없으며 그런 목적을 달성하고자 노력하는 것이 없고 단지 생명의 지속 그 자체에서 이미 목적이 달성된 것이다. 육체는 영혼을 끌어당기는 중력이.. 2020. 2. 14.
전체와 객체, 육체, 영혼, 인과, 성장, 무 전체와 객체 인과는 인과의 주체를 특정할 수 있어야 한다. 전체는 인과의 주체를 특정할 수 있는 개체가 아니다. 따라서 인과는 개체라는 주체를 필요로 한다. 그러므로 인과는 개체라는 조건하에서만 가능하다. 그런데 인과는 모든 선행한 인과의 결과이며 영원히 재생산되는 특성이 있다 따라서 개체는 인과로부터 완전히 벗어날 수 없다. 또 인과는 개체를 전체로 되돌릴 수 없도록 개체를 지속시킨다. 인과는 개체의 자기 형상 유지를 위한 운동이다. 개체는 인과의 주체이며 인과의 원인이다. 개체의 존재 원리는 인과라 할 수 있다. 육체는 전체로 귀속되는 가? 육체가 죽으면 모든 분자가 결국에는 지구의 자연속으로 분산된다. 그러나 여기에서 분산은 개체가 전체로 변화하는 것이 아니다. 수억개의 분자가 각기 다른 곳으로 간.. 2020. 2. 14.
삶의 본질 ※이 블로그는 중간중간 보이는 광고 클릭 시 발생하는 소정의 비용으로 운영됩니다. 영적 성장을 모델로 삼는 건 마치 인격신을 설정하는 종교 구도와 흡사하다. 그러나 영적 진화는 성장이 아니고 적응이다. 어떤 사람이 진화를 수만년을 해왔건 수천만년을 해왔건, 진화에서 앞선 자도 없고 뒤쳐진 자도 없다. 오직 이 현재의 조건에 적응해서 영적 근원을 추구할 뿐이다. 그 누구도 영적 선배도 아니고 후배도 아니다. 모두가 근원의 나툼이다. 다만 이 현상계에서는 개체성의 수많은 변수들이 모여 개성으로 조건 지어진 중생성으로 인해 각기 달라 보일 뿐이다. 그 모습을 보고 영적 진도를 가늠한다는 건 모순이다. 손가락이 어떤 건 키가 작다고 해서 내몸의 하등한 부분이 아니다. 모두가 그 자체로 근원에 뿌리내린 존재일 뿐.. 2020. 2.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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