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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에 사라진 책들 고려사 > 권122 > 열전 권제35 > 방기(方技) > 김위제 > 김위제가 『도선비기』를 근거로 남경 천도를 건의하다 「신지비사(神誌秘詞)」에서 말하기를, ‘저울추[秤錘]와 저울접시[極器]에 비유하자면 저울대[秤幹]는 부소(扶疎)이며, 저울추는 오덕(五德)을 갖춘 땅이고, 저울머리는 백아강(百牙岡)이다. 〈이곳에 도읍을 정하면〉 70개 나라가 항복하여 조공을 바칠 것이며 〈땅의〉 덕에 힘입어 신기(神氣)를 수호할 수 있을 것이다. 세조실록 7권, 세조 3년 5월 26일 무자 3번째기사 1457년 명 천순(天順) 팔도 관찰사(八道觀察使)에게 유시(諭示)하기를, "《고조선 비사(古朝鮮秘詞)》·《대변설(大辯說)》·《조대기(朝代記)》·《주남일사기(周南逸士記)》·《지공기(誌公記)》·《표훈삼성밀기(表訓三聖密記)》.. 2019. 5. 19.
북한의 심각한 문제는 핵보다는 정권이다. "북한의 민주화 없이는 어떤 미래도 기대할 수 없다" 북한은 힘이라곤 쥐뿔도 없는 주제에 지금도 수틀리면 무섭게 공갈 협박하는데, 만일 북한이 제재 해제와 경제 지원 등으로 경제 발전을 이루고 군사력도 강해진다면 김정은 독재정권이 얼마나 더 기고만장할까? 나도 한 때는 감상에 도취해 막연한 망상에 젖어서 모호한 부분들을 방치한 채 북에 대한 기대감에 젖은 적이 있다. 늘 모호한 데에서 문제가 생겨난다. 모호한 부분은 복잡다단한 인과성이나 거북하고 인정하기 싫은 사실들이 숨어 있기 때문에 방치된 영역이다. ▶북은 아직 더렵혀지지 않았고 민족의 자긍심을 지키고 있는가?▶북의 핵은 민족을 위한 무기인가?▶미국은 비핵화를 하지 않는 북한을 용인할 것인가? ▶북은 소수에 의한 부와 권력 집중이 되지 않는가?▶북한.. 2019. 5. 12.
역사를 대하는 잘못된 태도, 개인적 회의에 의한 논증 역사를 대하는 잘못된 태도 개인적 회의에 의한 논증Argument from Personal Incredulity "개인적 회의에 의한 논증"(Argument from Personal Incredulity)은 개인적 의문을 느낀 것을 이유로 삼아 전제가 거짓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예를 들어 "당시 무지하고 사회적 약자인 오xx가 설마 권력자의 횡포에 의한 성추행을 했을리가 있는가?"라는 배우 오xx 친구의 논리는 대표적인 개회논이라 할 수 있다. "사이버전사 역할을 하겠다는 열성 지지자들이 차고 넘쳤는데 민주당이 드루킹과 그 댓글 부대를 만들 이유가 있었을까?"라는 진중권의 논리도 개회논이다. "민주당이나 문캠프가 드루킹 댓글 부대를 만들어 관리했다면 뭐 하러 경찰한테 그 실체를 밝혀달라고 하겠나?"라는 .. 2018. 5. 23.
식민사학자들의 저급한 해석 능력 학문은 위대하나 학문권력은 무지하다 역사는 치밀한 논리와 언어능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를 위해 스스로 부단한 훈련을 해야 한다. 그러한 바탕 위에 해석학적 통찰과 계보학적 가설, 비교 문헌사료적 분석 등 역사학의 방법론을 올바로 적용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식민사학자들은 이러한 역사학자의 소양은 없고 스승과 선배의 말을 맹신하는 종교적인 행위를 함으로써 일제가 남겨놓고 간 식민 사학을 변동없이 유지하는 역할에 사활을 건다. 이 글은 그 동안 한국의 역사를 억압하고 강제로 겁탈해온 식민사학을 이어받은 반역도 역사기득권 어용 강단사학자들이 얼마나 논리와 언어 이해력, 구성력에 있어서 저급한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이들 진부하고 아둔하고 반역적인 역사계의 적폐들은 일제가 떠나면서 남겨놓은 동물농장에 주인.. 2018. 5. 21.
역사는 종교가 아니다 역사를 종교적으로 대하는 사람들 자신이 반(反) 식민사학편인줄 아는 노예들이 존재한다 비판 정신이 없는 사회는 돼지 사육장이다 식민사관의 지배로부터 벗어났지만 또 다른 사관의 권력에 종속되는 자들이 있다. 식민사관을 타파하려는 행동은 옳지만 그럴수록 더욱더 신랄하고 정밀하게 자료를 비판하고 논리적으로 따져 물어야만 반 식민사학 진영이 정당성을 얻는 것이다. 그러나 오히려 엉뚱한 가정이나 근거없는 말글에 대한 종교적 맹신에 의해 『확증편향』에 빠져드는 이들이 참 많다. 이들 중에는 자신들도 반(反)식민사학이라는 진영에 소속한 일원이라며 마치 자신들의 이야기에 동의하지 않으면 식민사학의 프락치나 되는 거처럼 분위기를 조성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들은 탈식민 사학의 태도만을 가지고 있을 뿐 아직 노예로부터 벗어.. 2018. 5. 20.
『고려사』,북한도 역시 역사 기술에 '중국'이라는 용어를 남용한다 -'중국'이라는 용어의 개념 정리가 필요하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이들이 해석해서 옮겼다는 『삼국유사』 해석본 책들을 펼치면 첫 시작 단군 이야기 부분에 '평양'이라는 지명에 대한 주석부터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게 흔하다. 다른 삼국유사도 대부분 같은 책을 베낀 책들이다. 평양의 실제 위치도 연구하지도 않고 무조건 현재의 북한의 평양을 지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전형적인 반도사관의 틈바구니에서 나를 격리하고 세뇌하는 역겨운 지적 독극물이었다. 한심하고 어이 없어서 구토가 나올 지경이다. 따라서 나는 우리나라서 출판하는 고려시대에 저술한 책의 해석본들을 신뢰할 수 없게 되었다. 특히 우리가 접하는 삼국유사, 삼국사기는 왜놈들이 저희 입맛에 맞게 이미 한번 손 본 책이라는 정보도 있었다. 이러던 차에.. 2018. 5. 14.
강경화의 수상한 역사관, 퓰리처상 받은 '총,균,쇠'와 강경화, 그리고 반민족 피지배 사관 한민족이 중국의 노예민족이었다고 믿는 외교부장관 당시 신임 외교부 장관 강경화가 이 책을 칭찬했던 자료가 있길래 이 사람의 생각을 알아보기 위해서 직접 읽어 보았다. 그런데 마지막 부록 영역에서 이상한 걸 발견 했다. 『총,균,쇠』 634페이지에 "108년~ 313년 사이에 한국이 중국의 지배를 받았다" 라고 씌여있다. 이런 일이 벌어진 이유로 나는 확신한다. 이는 조선총독부에서 조작하여 만들어 놓고 가버린 한사군 한반도설을 참고한 주장이다. 이미 거짓으로 드러난 한사군 한반도설이라는 거짓말을 퓰리쳐상 받은 책에 고정사실처럼 박아놓았다. 또 그러한 이유의 배경에는 한반도만이 한국인의 역사 무대였다는 식의 무지한 가정을 하고 있다는 점도 한 몫 하고 있다. 강경화는 이러한 내용에 대해서 비판적인 독서를 한.. 2018. 5. 12.
『환단고기』 문구 변화와 신뢰성 부족을 고발한 논문을 읽고 -『환단고기』는 더 연구해야 한다- 환단고기 표지 『환단고기(桓檀古記)』 성립 과정(내용변화를 중심으로), 인하대학교 대학원 융합고고학과 장영주, 석사 논문에 관한 나에 생각을 정리하고 싶다. PDF파일로 올라온 논문을 공유하니 궁금하신분은 일독을 권합니다. 약 112장으로 구성된 이 논문의 내용은 대체로 정리하자면 ▶ 이유립이 기고지에 부분 공개한 것과 필사본 원문 사이의 부정합을 중심으로 서술했다 ▶ 이유립이 기고한 기고문과 후에 발행한 『환단고기』가 약 60여 곳 이상의 비정상적인 인용 오류 ▶ 참고 문헌이나 관련 인물들의 신빙성 문제 대략 이 정도의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다. 주요 문제점을 나열하자면 이렇다. 자유지, 한단고기 , 배달의숙본 등을 거치면서 복애거사가 휴애거사로 변하고 또 다시 복애거.. 2018. 5. 12.
조선의 파저강(婆猪江) 정벌과 명나라의 위기의식 ※이 블로그는 중간중간 보이는 광고 클릭 시 발생하는 소정의 비용으로 운영됩니다. 파저강(婆猪江) 정벌 ※이 글은 복기대 교수의 논거에 착안하여 직접 조사한 자료입니다. 세종실록 59권, 세종 15년 3월 20일 계유 1번째기사 1433년 명 선덕(宣德) 8년 정사를 보았다. 임금이 여러 신하들에게 이르기를, "고려의 윤관(尹瓘)은 17만 군사를 거느리고 여진(女眞)을 소탕하여 주진(州鎭)을 개척해 두었으므로, 여진이 지금까지 모두 우리 나라의 위엄을 칭찬하니, 그 공이 진실로 적지 아니하다. 관이 주(州)를 설치할 적에 길주(吉州)가 있었는데, 지금 길주가 예전 길주와 같은가. 고황제(高皇帝)가 조선 지도(地圖)를 보고 조서(詔書)하기를, ‘공험진(公險鎭) 이남은 조선의 경계라. ’고 하였으니, 경들이.. 2018. 5. 11.
고려말 영토 서북방면에 대하여 ※이 블로그는 중간중간 보이는 광고 클릭 시 발생하는 소정의 비용으로 운영됩니다. 고려 영토 심양(瀋陽) 태조와 서북면 원수 지용수 등이 동녕부를 공격하다. 8월, 우리 태조와 서북면 원수 지용수(池龍壽)·부원수(副元帥) 양백연(楊伯淵)에게 명하여 가서 동녕부(東寧府)를 공격하게 하였다. ->반도사학에서는 동녕부가 평안도부근으로 그리고 있지만 동녕부는 요동이었다. 다음 문장을 보자. 기병[輕騎] 3천 명을 거느리고 요성(遼城)을 습격하게 했는데, 저들은 우리 군사가 적은 것을 보고는 이를 얕보아 싸웠으나, 많은 군사들이 잇달이 이르니 성중(城中) 사람이 바라보고는 간담이 떨어질 지경이었다. -> 동녕부를 공격하러 간 태조가 요성(遼城)을 공격하고 있다. 요동성(遼東城)은 옛 고구려의 성이다. 지금의 요양.. 2018. 5.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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