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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사/△ 사설

계엄과 탄핵에서 윤석열의 진짜 목적은 의원내각제??

by SacredCrow 2025. 1.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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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이 진정으로 노리를 것에 대해... 


계엄 선포, 국회의 계엄 해제 가결에 순응, 성실히 조사에 임하겠다더니 소환 불응, 법원의 영장 집행 거부, 공수처의 권한을 트집 잡고 시간 벌기, 경호처 직원 뒤에 숨어 있다가 경호처 분위기 바뀌니 갑자기 투항, 검찰 조사에서는 묵비권 행세, 심지어 헌재는 능력이 없다며 법에 근거한 공적 기관의 권위와 기능을 부인한다.

 

이제는 아얘 계엄 포고령을 집행할 뜻이 없었다 한다.

계속해서 회피를 하는 듯한 모양세이지만 사실은 이것이 진실일 수 있다. 목적이 알려진 것과는 다른 것이기 때문이 아닐까?


윤석열은 입법부와 사법부를 방해하고 지연시키고 혼란을 가중시키며 엇박자를 낸다. 그런식으로 엇박자에서 사법부와 공수처의 강제 조치들이 들어오면 예상외로 쉽게 수용하고 마치 순교자 행세를 하는 듯이 보인다. 이 때문에 국힘당 의원과 보수 시위자들이 눈물을 흘리며 보수 결집을 하고 지지세를 올린다. 

이것이 일종의 게임이라고 할 때, 참 이상한 것은 윤석열은 이 게임에 집중하지 않고 회피만 하고 있다는 점이다. 논평가들은 이를 시간 끌기 전략이라고들 하는데, 내가 보기에는 약간 다르다. 시간 끄는 거조차도 하나의 방편이고 그 방편으로 귀결하려는 목적은 다른 데에 있는 것으로 추정한다. 

우리가 그를 잘 이해하지 못하고 고구마 먹다 막힌거마냥 답답한 이유에 대해 말하고 싶다. 이와 관련하여 어쩌면 윤석열은 게임의 규칙으로 둘러싸인 현상의 테두리 안에 있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의 게임은 다른 영역에서 진행되고 있으며 다른 목적에 다가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대중이 관찰하는 현상과는 다르게, 윤석열은 현상을 방편으로 삼는 매타적 목적을 지향하는 이차방정식을 하고 있으며 촛불은 일차방정식을 하고 있다. 촛불은 민주주의를 바라보고 있지만 윤석열은 개헌을 바라보고 있는 게 아닐까?

 

그의 관심사는 계엄 정당화나 대통령직 사수가 아니다.

그는 대통령제에 관한 문제의식을 우리의 머리가 아니라 가슴에 심는 수법을 쓰고 있다. 대중으로하여근 대통령제에 대한 경멸감을 주고 불쾌한 감정에 휩싸이게 한다. 그러한 대중의 정동(情動)은 일사천리로 내각제로 직행할 수 있는 에너지로 전환된다. 

 

민주당과 만나서 불쑥 의원내각제로 가자고 제안하는 권성동.

 

이재명이 만일 대선에 승리할 가망이 없어지면 내각제네 동의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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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진짜 입장은?

 


한국의 정치 기득권 집단과 미국의 지도부는 한국인이 감정만 자극하면 휩쓸리기를 잘한다는 걸 잘 알고있다. 대중의 그 감정에 정의감을 연계시켜 부여할 수만 있다면 일은 저절로 돌아간다. 지난 수십 년간의 한국 대중의 행태는 그러했다. 이 같은 한국사회에 대한 이해를 전제로 하는 한편

미국은 한국이 정권이 바뀔 때마다 입장이 바뀌는 점에 대해서 넌덜머리가 났을 것이다. 특히 대북 대중 문제에 있어서 한국은 마치 다중인격자처럼 구는 것과 같다. 

이에따라 미국은 동아시아의 정치적 일관성을 확립하기 위해서 한국도 일본처럼 소수가 지속적으로 지배하며 정책을 유지하는 내각제 형식으로 전환될 것을 선호할 수 있다. 그러면 미국의 입장에서는 매우 수월하게 동북아 경제안보에 관한 일관된 정책을 펼 수 있고 이에 대한 한일의 꾸준한 협조를 받을 수 있다. 

 

일본놈은 삼자 만남에서 사진 촬영시마다 항상 바이든만 바라고보 있거나 바이든 옆에 밀착한다.

 

일본 정치인 놈은 사진을 찍을때마다 항상 조금씩 더 미국 옆에 붙어 찍는다. 그래야 서열 정리가 된다고 보는 지 늘 이런 구도에 정신병자처럼 집착한다. 그바람에 늘 구도가 비대칭으로 보이게 된다. 미국은 내심 일본의 이런 발발이 짓을 즐기고 있을 것이다. 진정한 민주주의따위에는 관심이 없다.


윤석열은 여짓껏 미국의 이해에 부합하는 행동을 해왔고 특히 골머리 썩던 한일 갈등도 강제로 봉합하며 미국의 요구에 200% 응해왔다. (심지어 미국의 도청에도 용서하는 수치스러운 아량을 베풀기까지 하는 호사를 누리지 않았나)

미국은 한국이 일본의 정치체제를 모방하기를 바랄 것이다. 

한국의 대중에게

감성팔이와 함께 알량한 정의감을 부여하면 눈과 정신이 마비되어 자신의 일에 확신이 생기고 보람을 느끼며 점차 재고의 여지를 남기지 못하게 되어 보다 넓고 보다 상위 차원에서 혹은 전혀 다른 관점으로부터 사고하려는 시도를 모두 소홀히 하게 된다. 

예컨대 민주주의 운운하면서 뭔가를 성과를 이룬 거처럼 여기지만 사실 사안의 정치 군사 외교 안보적 측면에 대한 고려는 배제되어 있는 소아적인 성과지상주의에 매몰되곤 한다.

편견과 확증편향은 집단행동을 보다 파시즘적으로 몰아가고, 파시즘은 본질적인 목적인 민주주의라는 개념에서 모순되는 방법으로써 일시적인 운동의 활력으로 소비된다. 그런 식으로 본질은 자꾸 외면된다. 

그러지 않으려고 다각적 사고를 고려한다면 정보의 복잡성이 증가하여 대중은 어떤 결정도 할 수 없게 된다. 복잡성의 증가가 바로 강조점의 예봉을 상실하게 하는 물타기인데 이 물타기는 복잡성을 다루는 데에 미숙하고 찻잔 속의 태풍에 도취한 대중 파시즘을 와해하는 물타기인 것이다. 

그러나 만일 관점을 보다 크게 열어놓고 사고하는 데에 익숙하다면 물타기가 아니라 종합적이고 통섭적 사고를 할 수 있게 되고 안목을 더 키울 수 있지 않을까? 유치하게 "우리가 이렇게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행동을 한다"며 국제적 관심과 칭찬을 관음 하는 관종질에 연연하지는 않을 것이다. 

한국은 파시즘을 통해 집단 패티쉬의 즐거움으로 전향시키는 이상한 습성이 사라져야 한다. 그 습성의 뿌리에는 열등감이 서려 있다. 열등감은 맹목적 사대주의를 부른다.

통시적으로 공간적으로 모든 관점과 사건과 뒤에 흐르는 일관된 맥락 사이의 함수를 직관적으로 간파하는 것이 더 수준 높은 대중으로 이전할 수 있는 조건은 아닐까? 개인 각자가 그렇게 하는 인구 구성원이 늘어난다면 그것이 국가와 민족을 지키기 위해 바람직한 민주주의의 기초일 것이다. 

 

탄핵이후의 중공, 북한으로부터 들어오는 도발과 위기에 대해 어떻게 할 것인가? 중공의 대한민국 교란, 심리전, 자본 침투에 의한 국부 잠식, 기술 탈취 및 무역 도발, 안보 위기와 국토와 해양 침략에 대해서 어떤 고민을 하고 있나? 일본의 군사적 발호 위기에 대해서는 어떤 대책이 있나? 러우전쟁 종식 이후의 러시아는 어떻게 다뤄야 할까? 전쟁 발발시의 북,중,러,일에 대한 전략은 뭔가? 영토를 넓히기 위한 군사 외교적 전략은? 미국에 대한 사대주의는 어떻게 완화할 것인가?

 

이런 것들을 모두 함께 고민하지 않고 알량한 민주주의 지켰다에 자부심을 느낀다는 건 아둔하고 유치한 짓이다. 그런 민주주의에는 어떤 내용도 없으며 막연한 PC적 열정만 있다. 이런 아둔하고 근시안적인 생각으로 살다가 한국은 늘 열강에 의해 먹잇감이 되어 왔다. 

 

먹잇감이 되지 말고 사냥꾼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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