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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철학, 영혼, 생명

윤회의 카르마는 단순한 것이 아니다.

by SacredCrow 2024. 5.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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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의 차원에서는 생전의 사회적 위치와 조건에 구애받지 않는다. 윤회를 한다고 할 때 생전의 사회적 조건에 의해서만 다음 생의 존재 형태가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전생에 덕을 많이 배풀었다고 해서 현생에 부자로 태어난다던지 하는 건 인간의 권력욕이나 공존을 위한 도덕적 금기를 설정하기 의해서 만들어진 유치하고 편견에 찬 설정이다. 

지구와 우주가 인간의 주민등록상의 이름이나 신분 따위를 전혀 고려하지 않듯이, 마찬가지로 영은 고기덩이에 들어찬 정신에 의해 활동하는 생명을 가진 몸이 누리던 사회적 조건이나 사회적 경험에 관해서 관심을 두지는 않는다. 

 

사회란 좁디좁은 개념으로 인류의 공동생활을 위해 형성된 구조화된 환상이다. 감정과 생존을 위한 이권을 샘하는 인지-논리, 정신적-생물적 욕심을 추구하는 욕망은 사회의 응집을 유지시킨다.  

개인의 사회적 조건과 위치와 사회적 경험은 생존에 필요한 것들이며 생존하는 기간만이 그것의 유통기한이다. 죽으면 사회적 조건(생존을 목적으로 하는)은 곧바로 상실된다. 

이는 나비가 애벌레처럼 기어다니지 않는 이유와 같은 거다. 우리는 어느차원으로 뛰어 넘는 즉시 기존 차원의 기억과 감정으로부터 분리-격리된다. 

 



카르마라는 걸 논할때 사람들은 흔히 사회적 관계와 행한 일들 그리고 그 인과에 대해서 떠올리지만 그보다 훨씬 복잡한 다차원의 인과가 관여한다. 

 

출처  Aseptic Void


인간의 사회적 존재와 관계 뿐 아니라 물리적 사건들, 영적 사건들에 의해서 개입된다. 인생의 사회적 내용으로써가 아니라 존재가 처한 물리적-영적 구조로써 카르마는 설정되는 것이다. 

또 개인의 카르마만 지속되는 것이 아니라 그룹의 카르마와 범 세계적 카르마 우주의 카르마 영계의 카르마가 함께 어우러져서 작용한다. 극소미립자인 글루온,w보손,z보손, 하드론(쿼크)와 랩톤의 카르마도 있다. 모든 변수의 복잡계 안에서 이뤄지는 카르마를 우리는 전혀 예측할 수 없는 것이다.

 

수 없는 타인이나 소속 집단, 우주 환경의 카르마가 간섭한다. 따라서 전생에 죄 지어서 현생에 벌 받는다던지 전생에 덕을 배풀어서 현생에 부자가 되었다든지 하는 건 정말 유치찬란한 한심한 발상일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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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역사로 인해 윤회가 나만의 미래 역사를 여는 게 아니다. 나는 모든 우주적 사건의 주체이자 결과로 존재하는 것이다. 

결론, 우리는 무언가로부터 초래된 사회적 존재로 사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체가 완전히 빛의 존재이며 영원한 사랑의 씨앗이며 열매이다. 완전한 필연으로 존재하는 우주의 집적회로와 같은 것이다.

불타의 자비심에서 흘러나오는 성상이며 부분임과 동시에 전체이다. 가장 높고 가장 밟고 가장 성스러움의 메타포로써 진리의 일면에 드리운 그늘을 타고 내려와 그것의 삼매에 빠져 있는,  원시에서 피어난 생명에 깃든 마음이다.


우주와 닮았으며 , 이 진리의 화신으로 생존하는 사회적 존재는 그냥 이곳에서 이렇게 사는 형식에 처한 것일 뿐이다. 사회적 존재가 존재의 본질을 말해주는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죽기 전까지는 그것에 연연하도록 되어 있다. 

 

인간 사회에 존재하는 형식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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