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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들개라는 영화가 있었다. 그 영화에서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들개는 죽기 전까지 앞만 보고 뛴다. 아무도 멈출 수 없다."
나는 이것에 대해서 이렇게 해석했다.
💭 ❝들개는 자신의 행동이 범죄든 아니든 도덕적 판단을 하지 않은 채 자신의 욕망에 이끌리는 대로 달려갈 뿐이다.❞
영화의 배경에 나오는 패전국의 폐허와 가난 그리고 부족한 치안과 범죄 등을 묘사하는 이 영화는 태평양 전쟁 패전과 무관한 영화가 아님을 알 수 있다. 해석을 이어간다면.
💭 ❝패전국 일본의 전쟁 행위는 그 나름대로 그렇게 될 수 밖에 없었다. 불가항력으로 불구덩이게 빠져들은 거다. 패잔병을 너무 적대시 하지 말자 ❞
💭 ❝누구의 책임도 아니다. 세상은 욕망을 위해 달려가는 들개들이 힘으로 지배해 나가는 사회다. 그 싸움을 일으켰고 졌다 한들 죄악이 아니다. 우리는 그럴 수 밖에 없는 우리만의 사정이 있었던 거다.❞ 라는 논리가 있다.
구로사와 아키라의 영화들을 보면 대체로 이런 매세지가 늘 있다. '라쇼몽'도 마찬가지 '칠인의 사무라이'도 마찬가지다. 각자 개인의 사정에 따라 이기적인 생각으로 일을 벌이고 자신의 일을 둘러 댄다.
💭 라쇼몽- ❝도덕적 판단 따윈 배제하자. 결국 각자 쟁탈하는 것만이 세계의 진실이다. 그러니 정답은 없는 거니께 앞으로 열심히 먹고 살 걱정이나 해라. ❞,
💭 칠인의 사무라이- ❝전쟁은 끝났고 모두 피해가 막심하지만 열심히 사는 저 농민들이 미래의 주역이다. 그러니 패배의 슬픔을 잊고 도덕 운운하며 자책하지도 말고 저 농민처럼 잘 먹고 사는 데에 집중하자.전쟁에서 이긴 군인은 최종 승자가 아니고 저 농민이 최종 승자다. ❞
구로사와 아키라는 전쟁의 흔적을 지우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자는 좋은 말을 하고 있는 거 같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이런 자들의 이러한 상상에 의해서 일본의 침략 역사가 이뤄져 왔다.
본래 그 나라 사람들이 상상하는 한계 내에서, 딱 그것에 걸맞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이다. 구로사와 아키라가 상상할 수 있는 수준은 바로 '흙의 논리' 혹은 '짐승의 논리' 혹은 '힘의 논리'같은 것에서 멈춰있다. 구로사와 아키라는 그것을 벗어날 수 없다.
하늘의 '도'나 인간의 '양심'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오히려 불편하고 하찬은 것으로 여긴다. 이를 '실용주의'라고 미화한다.
실용주의라는 건 좋은 거지만 도덕을 외면하기 위해 부각시킨 실용주의는 인간의 길에서 스스로를 탈선 시켜버리는 위험한 짓이다. 도덕이 가혹한 자기 반성의 의무를 부과할 때 그것을 직시하고 극복하지 못하는 것이 일본의 근본적인 문제다.
일본이 그것을 하지 않으면, 철학을 하든 역사를 하든지간에 그것을 제대로 하려하면 일본의 각 개인이 일그러진 자신들의 자화상과 직면하게 되고 수치를 감수해야 하는 용기, 자신이 속한 집단의 과거 행적을 반성하고 극복하는 용기 없이는 진실을 세상에 드러내기가 힘든 한계에 부딪히게 된다.
예컨데 일본의 고대사는 부여계의 일본 정복 역사임을 밝힌 오카 마사오, 에가미 나미오, 우에다 마사아키 같은 이들은 역사의 진실을 말한 이유로 살해 위협까지 당했다. 개인이 도덕을 따름으로 인해서 고립되는 사회는 지옥의 신기루 같다. 이런 식으로 간다면 천년이 가더라도 일본은 역사와 도덕 앞에서 떳떳할 수 없는 문제아로 남을 수 밖에 없다.
내가 봐온 수십년간 일본 영화나 에니들을 보면 특징이 있다. 바로 도덕적 판단을 애매하게 얼버무린다. 어느순간 악당에 대해서 급격한 반전으로 무조건적인 관용을 배풀 곤 한다. 그렇게 해서 오는 묘하지만 얕은 느낌의 정화감과 감동을 일종의 수준 높은 전개로 여긴다. "이기적 욕망이 있으니까 그렇게 됐다. 그럴만 했다"는 식의 논리가 늘 우선시 된다. 이 전개는 우수함과는 거리가 멀고 잔 기교에 가깝다.
범죄자의 정신승리법이다.
물론 간혹 '할복'(1962, 고바야시 마사키 감독)과 같이 사무라이의 위선을 비판하고 인간의 본성인 도덕을 환기시키는 철학이 있는 영화도 있긴 하지만 이렇게 도덕이 뭔지 인간의 본성이 뭔지를 바람직하게 자성하는 영화는 별로 없다.
일본인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세상에는 힘의 논리와 이기적인 욕망이 지배한다. 그곳에 들개만 살고 있다. 아베는 들개다.
일본의 질병은 도덕에 눈을 떠야 치료된다. 하늘의 도를 알고 땅위에 이를 덕으로 실천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인간이라는 걸 아는 것이다.
도덕은 단순히 순하고 착한게 아니다. 도덕은 정의, 사랑, 예의, 성실, 지성으로 배합되어져 실천한다. 이것들을 닦아 나간다면 일본은 저열한 힘의 논리가 빚은 지옥에서 스스로 벗어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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