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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

정진석의 무식한 역사 인식에 대한 비판

by SacredCrow 2022. 10.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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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석

아소 타로

 

어째서 일본 극우 부류는 입이 한쪽으로 비 뚫어지는 자들이 많을까. (의학적 병이 아닌)

일그러진 심성과 사고능력만큼 비 뚫어지는 걸까?

아소는 지네 나라와 자신의 이익을 위해 그런다고 쳐..

정진석 저건 왜 남의 나라 좋은 일을 할까?

 

최근, 정진석의 주장이 논란이 되고 있다. 이는 명백히 현재 일본 극우와 한국의 친일파들이 하는 주장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정진석의 주장을 세 문장으로 정리하면 이렇다.

 

"조선은 사색당파로 스스로 망했다. "

"일제가 와서 조선을 평화적으로 접수한 것이다."
"일제와 조선은 전쟁을 한 적이 없다."

 

에 대해서 비판을 하고자 한다. 

 

△ "조선은 사색 당파로 스스로 망했다. "는 정진석의 주장
이는 사실이다. 허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일본 극우가 어떻게 자기들의 범죄는 덮기 위해 개 논리를 만드는 데에 역사적 사실을 이용하는 가이다. 때문에 우리는 명확히 문제가 뭔지를 알아야 한다.

19세기에 조선이 당파와 외척 발호, 무능과 부패로 망국적 상황으로 치닫던 것은 사실이다. 이 부분까지 부정해선 안된다. 비록 식민 사학과 일본 극우들이 이 부분을 이용하여 일본의 정당성을 주장하지만 그건 논리 끼워 맞추기로 억지로 만든 개 논리이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는 이 사실만큼은 부정해선 안된다. 우리가 역사의 사실을 부인하는 순간 우리조차도 역사를 왜곡하는 게 되고 일본의 똥덩이 같은 역사 왜곡에 말려들게 된다. 

일본의 역사 왜곡은 모든 곳에서 일어났고, 일제강점기를 지나 지난 70년간의 현대까지도 일본의 한국 고대사 중세사 근대사 역사 왜곡은 전 세계 석학을 속이기 위해서 미국 하버드를 숙주로 삼아 논문과 저술을 통해 한민족의 고대사부터 역사왜곡을 재탕 삼탕 인용하게 했으며 식민사학은 다층 다각적인 구조화까지 되어 있다. 

그 왜곡에는 늘 논리 오류들이 있다는 걸 우리는 알아야 하고 일본의 개소리에 대해서 우리가 더 정신 차리고 논리로 대응해야 한다. 

조선은 500년간 중원에 대하여 불필요하게 사대를 했으며 조선 중기 임진왜란 이후부터는 개혁은커녕 오히려 더 극단적인 명에 대한 사대로 노론 집단의 영구 집권이 더 고착화되어 갔고 조선 후기에는 국가의 기능이 점차 마비되고 극악무도와 부패가 만연한 상황이었다. 노론은 심지어 명의 신하를 자처하며 조선 왕을 무시하였고 외척이 되어 조선 왕을 요리하였다. 

1671년 청나라 강희제는 "조선의 왕권이 약하고 신하의 권력이 크다며 백성에 굶어 죽게 되었다"(군약신강)라며 조선의 정치를 비판했던 바 있다.

그 결과 조선 말기의 부패는 더 극심하였다. 젊은 시절의 김구 선생도 선발 과정에서 부패가 만연했던 조선 후기의 과거시험에서 낙방한 후 아예 포기하고 세상을 바꾸기 위해 동학 운동에 뛰어들었다. 조정은 군대의 군량미에는 모래를 섞었다. 민비의 친인척에 의한 매관매직도 성행하였다.

조선 말기에 조선에 방문한 영국인 이사벨라 버드 비숍은 그녀의 책에 조선 민중을 수탈하는 관료들의 부패에 대해서 적었다. 허나 이는 조선인의 본질이 아니라 쇠락하고 있는 국가의 말기 상황이라 할 수 있다. 19세기는, 세상에 몇 없는 기나긴 500년을 유지한 나라, 조선이 맞이한 종말의 시기였던 것이다. 

유사(有史) 이래로 모든 나라는 흥망성쇠를 겪어왔다. 당시 조선은 쇠락의 시기였다. 그것이 부끄러운 과거사라 할 수는 없다. 다만 저열하고 근본 없고 악마 같고 미개한 폭력의 나라 일본제국과 엮이면서 큰 불행으로 이어진 것이 안타까운 부분이다. 

우리는 조선 역사에 대한 반성을 해야 한다. "조선의 학정"이 식민사학에 의해서 강조되고 있다고 하여 그것이 식민사학이라며 "조선의 학정"을 관심 두지 않으면 역사는 또 반복된다. 이는 전형적인 원천봉쇄의 논리 오류를 스스로 자초하는 것이다. "조선 학정에 대해서 말하면 그것은 식민사학을 주장하는 것이다."라는 오류에 쉽게 빠진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더 이상 조선 학정에 대해서 거론할 수 없게 되어 역사에 대한 올바른 연구를 할 수 없게 된다. 이 점은 식민사학을 극도로 싫어하는 사람들도 간과해선 안 되는 사항이다. 이런 사항을 눙치고 뭉개면 안 된다.

또 한 가지 짚어볼 것이, 조선은 불필요하게 명에 사대를 했다. 500년간 이웃 나라에 굴종하며 사대를 했으니 관료들의 그 정신이 썩어 빠지는 건 지극히 당연한 귀결이다. 조선이 명에 사대하게 된 계기는 이성계가 고려에 반역하고 다루가치 벼슬을 얻은 목조 이안사의 후손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오늘날로 비교한다면 조선 총독부에서 고위 관료로 있던 친일파의 자손이 새 나라를 세운 꼴이다. 당연히 정통성이 없다. 정통성을 세우기 위해서 산적 출신 명 태조 주원장에게 자발적으로 엎드린 것이다. 주원장을 감정평가사 따위나 공증인처럼 이용한 것이다. 

신하들은 고려를 패망시키고 유학이란 것을 빙자하여 새로운 규율을 만들어 백성들을 통제했다. 유학은 그들 양아치들의 야망에 이용당한 애꿎은 철학 학문이었다.

이처럼 시작부터 문제가 많았던 조선에 대한 우리의 연구와 비판은 과연 충분히 이뤄지고 있는가?

내가 이 항목에 대해서 정진석에 대해 말하고 싶은 것은 조선이 사색당파와 부패로 망해갔지만 민중의 봉기에 의해서 개혁과 근대화의 불이 지폈고 그렇게 새로 일어났을 조선의 새 역사에 왜 일본이 와서 나라를 강도질했냐는 거다. 조선이 스스로 망해갔다 하여 그건이 일본 침략을 정당화해주지 않는다. 조선 패망과 일본의 강도질 사이에는 어떤 필연적 인과성도 없는 것이다. 조선이 망해도 그것은 조선왕조가 망한 거지 조선민족이 망한 것이 아니다. 따라서 조선 민족은 새로운 나라를 세우고 근대화를 할 참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일본이 개입하여 일본이 조선을 흡수한 건 전혀 순리적이지 않은 불의이며 불법 침탈이었다. 정진석은 이 개념을 분명히 하고 잊지 말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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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가 와서 조선을 평화적으로 접수한 것이다."는 정진석의 주장

일제는 총칼을 가지고 와서 우리를 겁박하였다. 총칼을 가지고 수없이 많은 이들을 죽인 연쇄살인범이 겁에 질려 이성을 잃은 여자를 폭력 없이 겁탈하고 나서 경찰에 잡히자 "나는 그 여자와 싸우거나 폭행한 적이 없다"라고 한다면 그것이 과연 설득력이 있는가. 일제는 조선에 대해서 무력을 이용하여 내정 간섭하고 부패 관료를 매수하고 무력을 이용하여 강제로 왕비를 살해하고 강제로 고종을 패위시켰다. 

△ "일제와 조선은 전쟁을 한 적이 없다."는 정진석의 주장
동학에 의한 갑오 농민전쟁 당시에 관군을 파죽지세로 이겼던 동학 농민군을 진압하기 위하여 조선 조정에 의해 일본군이 한반도로 진입했고 동학 농민군은 패전했다. 이것은 일본과 조선의 전쟁이었으며 일제가 조선 민중의 자발적인 근대화를 강제로 제압한 역사적 사건이다. 

 

3.1 운동 시기에도 수많은 조선인들이 일제의 총칼에 죽었다. 이 사건에서 두 가지 사실이 보인다. 바로 △500년의 역사의 종국으로 치닫던 망국적 상황의 조선에서 빚어진 조정의 패착과 민중에 의한 정치사회철학적 근대화의 지연이었다. 

1907년 남대문 전투는 대한제국 친위대군이 강제적 군대 해산에 반발하여 탄약과 무기가 부족했던 약 1500명의 대한제국군과 일본군이 벌인 전투였다. 또 같은 해의 정미의병은 고종 강제 퇴위에 반발하여 모인 의병이었다. 일본은 이를 토벌하기 위한 토벌대를 구성하여 전투를 벌였다. 3.1 운동 시기에도 수많은 조선인들이 일제의 총칼에 죽었다. 죽음을 무릅쓰고 운동을 벌였다.

이것이 전쟁이 아니면 무엇인가? 

 

수많은 이름 모를 순국선열이 흘린 피는 무엇이었나? 정진석은 광복절에 경축사 현장에 서있을 자격도 없으며 해국 행위로 구속 수감되어야 하고, 그렇게 할 수 있어야 제대로 된 나라다.

 


이후로 대한제국의 독립군들은 중국으로 넘어가서 일본과 수많은 전쟁을 치렀다. 우리는 명백히 일본과 수십 년간 전쟁을 한 것이다. 일제가 도망가는 날에도 광복군에서 차출된 이범석, 김준엽, 장준하, 노능서 4명이 미국 OSS의 책임자 버드(Willis Bird) 대령의 지휘 하에 국내 진공작전에 투입되어 여의도 비행장에 착륙하였다.

그럼에도 일본 극우와 한국의 친일 세력이 일본과 한국이 전쟁한 적이 없다는 하는 것에는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서 급작스럽게 한국을 초청하지 않은 미국의 원죄도 있다. 

1951년 4월에 일본의 요시다 총리 놈이 미국의 델라스에게 보고서를 전달했다. 이 보고서의 내용은 "일본에 끌려왔던 강제징용자가 100만 명 이상인데 이들이 북한 사람이며 공산주의자들이다 이 공산주의자들에게 배상을 해주면 일본은 엄청난 부담과 함께 혼란에 쌓일 것이다."였다. 

 

요시다 시게루 당시 내각총리대신



델라스는 이후로 한국을 대일 전승국에서 배제해버렸고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 한국을 참여시키지 않았다. 일본은 한국이 미국에 의해 태평양 전쟁의 승전국으로 인정받지 못한 이 사건을 근거로 하여 일본과 한국 사이에는 전쟁을 한 적이 없다고 하는 것이다. 

일제는 심지어 사령부를 두대로 나누어 소련군과 미군의 진군이 한반도에서 마주치도록 조장하고 패망하였다.  그렇게 해서 일본이 아닌 한국이 분단되었고 6.25 동족상잔이 벌어졌으니 일본은 우리 한반도 분단까지 조장하였던 것이다. 일본은 우리에게 1천 년간 씻어도 다 씻을 수 없는 죄악을 쏟아붓고 갔다. 

그러면서 아직도 반성은커녕 오히려 우리를 이간질하고 다시 한반도로 침략해서 그 시절의 만행을 재현하고 싶어 한다. 이러한 일본의 사이코패시즘을 그대로 답습하는 한국의 친일파들부터 제거해야 한국의 미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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