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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

식민사학자들의 저급한 해석 능력

by SacredCrow 2018. 5.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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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은 위대하나 학문권력은 무지하다



역사는 치밀한 논리와 언어능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를 위해 스스로 부단한 훈련을 해야 한다. 그러한 바탕 위에 해석학적 통찰과 계보학적 가설, 비교 문헌사료적 분석 등 역사학의 방법론을 올바로 적용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식민사학자들은 이러한 역사학자의 소양은 없고 스승과 선배의 말을 맹신하는 종교적인 행위를 함으로써 일제가 남겨놓고 간 식민 사학을 변동없이 유지하는 역할에 사활을 건다.


이 글은 그 동안 한국의 역사를 억압하고 강제로 겁탈해온 식민사학을 이어받은 반역도 역사기득권 어용 강단사학자들이 얼마나 논리와 언어 이해력, 구성력에 있어서 저급한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이들 진부하고 아둔하고 반역적인 역사계의 적폐들은 일제가 떠나면서 남겨놓은 동물농장에 주인 없는 개들이다. 이들은 불행한 시기를 지나온 한국의 흑역사다. 이들 역시 청산되어야 하고 이들 마피아의 부당한 학문권력을 무너뜨려야 한다.


그것은 단순히 개들을 쫒아내는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동물농장에 가축들이 아니었음을 온세상에 밝히는 일이다.





출처 : 이덕일, 한문공부 이야기 2 , https://goo.gl/NPjWNp


<본문 발췌>


서울대학교 국사학과의 김철준, 최병헌 두 교수가 편저한 『사료로 본 한국문화사(고대편)』에서 광개토대왕릉비의 첫 대목을 "옛날 시조 추모왕의 비롯됨은 북부여 천제지자(天帝之子)로부터이며 어머니는 하백의 따님이시니 알에서 깨어 세상에 나셨다”라고 해석하고 있다. 위 해석은 하늘 천(天), 따 지(地)도 모르기에 나온 해석이다.


먼저 두 서울대 교수는 구두점도 제대로 찍지 못했다. 구두점에 따라 해석하면 이렇게 된다.


“아! 옛날 시조 추모왕께서 창업하신 터전이다. 추모왕께서는 북부여에서 나오셨으며 하느님의 아들이시고 어머니는 하백의 따님이시다. 알을 깨고 세상에 나오셨다.” 


두 교수의 번역문은 유(惟)자가 ‘아!’ 또는 ‘생각컨대’ 따위로 쓰는 감탄사라는 사실을 무시한 것은 물론 야(也)자가 한 문장이 끝날 때 쓰는 어조사라는 사실도 무시했다.


추모왕이 북부여에서 내려와 천자의 제국 고구려를 세우는 명분은 추모왕이 하느님의 아들, 즉 천제지자(天帝之子)이기 때문이다. 건국의 정통성을 하늘, 즉 천명(天命)에서 찾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두 교수의 해석대로라면 천제지자는 북부여 해모수가 되므로 추모왕은 하늘을 거스른 반역자가 된다.


추모왕은 엄사수라는 강이 가로막고 있자 “나를 위해 갈대를 연결하고 거북은 떠올라라”라고 명령했다. 추모왕이 하느님의 아들이고 물의 신인 하백의 외손자이기에 엄사수에 대해 명령할 수 있는 것이다. 북부여 천제지자로부터 도망가는 반역자가 강물에 명령할 수는 없다. 이 경우 천명을 받은 것은 북부여 천제지자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시각으로 사료를 보지 않고 ‘국사학계 태두’, 또는 ‘○○대 교수’ 따위 외피로 보고 의탁하니 천자문만 알아도 틀린 것을 알 수 있는 해석을 따라가는 것이다. 


국내 대부분의 사학과에서는 한문을 제대로 가르치지 않는다. 표의문자인 한문은 장기간에 걸쳐서 체계적으로 습득하지 않으면 깨우칠 수 없는 언어다. 한문은 ‘문리(文理)’가 트여야 하는데, 지금의 커리큘럼으로는 도저히 문리가 트일 수 없다. 『사기』는 주석을 해석할 줄 모르면 본문도 해석할 수 없게 되어 있다.


엉터리 번역을 버젓이 하는 사람들이 이 나라 학문세계를 주도한다. 그 근본을 캐보면 일본인들에게 배운 학설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다. 나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것, 이것이 학문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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