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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사/△ 사설

안철수는 대안이 될 수 있을까?

by SacredCrow 2020. 2.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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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철수가 다시 정계 복귀를 선언했다.  발빠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간을 보기를 잘한다는 안철수답다는 생각이 든다. 최근에 바로 그 간보기 센서에 걸려들만한 간극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더민주당 정권은 상당히 고전을 면하지 못하고 있고, 특히 위선과 가식 등으로 얼룩진 조국 사태를 통해 국민의 실망과 운동권의 오만에 대한 회의 의식이 높아감에 따라 더 이상 더민주당이 구새누리 세력에 대한 대항마로써의 구실을 한다기 보다는 자한당2.0과 같은 역할에 머물러 버리게 될 공산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여기서 간극이 발생했다. 국민의 표심이 자한당으로 갈 수는 없고 그렇다고 더민주당으로 가기에는 그들의 그민찍('그래도 민주당 찍는다'라는 더민주당원의 비공식 신조어) 덫에 걸리고 싶지 않은 욕망이 발생하고 있다.

결국 국민의 표심은 말 그대로 표류 상태에 있다. 이 간극을 안철수는 노리고 있는 것이다. 그가 표방하던 제3세력이라는 포지션은 이전부터 있어왔다. 그러나 제3세력으로써 그 자시은 어떤 대안을 내놓고 있는 것인지가 늘 불분명했다. 

특히 안철수 그를 둘러싼 여러가지 모순된 미담들은 그의 신뢰성을 깍아먹기에 충분하다. 무엇보다도 그는 그가 정계입문을 가능하게 했던 키워드인 '새정치'라는 용어에 대한 그만의 정의는 무엇인지를 보여주지 못한 것이 어언 8년은 되지 않았던가?

그러다보니 그 역시도 적폐의 문법하에서 그것을 누리며 성장한 전형적인 인싸 유명인 쯤으로 전락한 지 오래다. 때문에 새정치의 신선함 보다는 기득권의 진부함에 가깝게 포지셔닝된 이 문제에 대해서 안철수는 돌파구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반 자한당, 반 더민주당의 정서에서 표류하는 국민의 표심이 제3의 정당으로 가야 한다는 것은 역사의 필연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안철수 정당으로 향하기에는 함량 미달이라 볼 수 있다. 오히려 그러한 대안은 청념이나 반기득, 인권, 분배, 정의 등의 키워드에 근접했던 예컨데 노회찬 같은 사람으로 표상되어 지는 세력이어야만 했다. 

그러나 그런 세력은 이미 공중에 부웅 떠버린 추상이 되어 버린지 오래다. 물론 설령 그 세력이 실존한다 하더라도 늘 소수파의 지위에서 한계지어버리는 현실도 대한민국의 정치 문화의 한계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안철수에게 내려진 숙제는 몇가지가 있다. 하나는 그의 기득권적 이미지를 어떻게 친서민적 이미지로 바꿀 수 있는 가이다. 위선은 안철수의 걸림돌이다. 집없는 설움을 안다며 엄청난 가격의 전셋집에 사는 그의 언행은 위선 그 자체였다. 

90년대 초에는 소프트웨어를 사고 파는 시장화가 정착되지 않았던 시절임에도 자신은 나라와 국민을 위해서 공짜로 소프트웨어를 보급했다며 영웅담처럼 말한다는 지 하는 식의 가증스런 거짓말로는 아둔한 호구와 dog-pig들 말고는 그 누구에게도 속일 수 없고 공감을 얻을 수도 없을 것이다.

이런 점들은 국민이 공감을 할 수 없게 하는 주요한 변수다. 안철수는 어떻게 이를 극복 할 것인가? 또한, 운동권의 시대를 접어야 한다는 역사의 사명은 분명히 있는 작금의 현실에서, 안철수도 역시 이를 추구하는 듯 하나 그렇다면 그 대안으로써 어떠한 정치와 외교, 경제등의 정책을 추구할 것인가?  또 그 것들을 관통하는 이면의 철학적 중심은 무엇인지를 국민에게 제시해야만 할 것이다. 당신은 지금까지의 좌파나 우파의 관념을 상속 받아서는 승산이 없기 때문이다.


구시대 운동권의 저항도, 쿠데타 권위주의 세력의 반공도 아닌 새로운 정치 표상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것이 바람직한가에 대해서 국민이 판단할 것이다. 그러나 지난 8년간의 행보처럼 아무것도 보여주지 못한다면 안철수 당신의 주변에는 당신의 이름과 돈을 보고 몰려든 기회주의 박쥐들만이 또다시 당신 모든 노력을 무산시키는 데에 본의 아니게 가담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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